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소설에 대한 스포를 다량 포함하고 있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사실 나에게 생소한 작가였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당시 내게 20세기 문학은 큰 매력을 느끼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나와는 상관도 없을 만큼 아득히 멀어져버린 로맨티시즘의 바이런, 키츠나 19세기 데카당트의 와일드같은 별세계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들의 작품에서 어떤 우월을 발견하거나 초월적인 심상을 발견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든 속성이 제거되어 순수한 맹목으로서의 예술을 즐기는 그 삶의 태도를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세상을 반영한 작품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면 작품을 창조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와서 보면 나의 그런 태도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멸, 외면 혹은 치기어린 고집에 불과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어딘가 포의 음습한 미국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물질주의와 청교도적 도덕관념, 자유주의와 영국에서 그대로 전해져온 속물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속내를 마치 일상인냥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단편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Not One of Us는 그녀가 그려내는 잿빛의 일러스트를 담고 있다.
그 중 표제작인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그녀의 단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젊은 예술가 루시엔을 중심으로 모인 뉴욕의 중산층의 모임에서 벌어지는 일로, 너무나도 흔히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을 캐치하여 사건을 전개 시키는 심리극이다.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그 모임에서 회계사인 에드문드는 이혼을 하고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며 변화된 생활방식을 시작한다. 그로인해 모임의 다른 멤버들과의 간극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사소한 불만에서 시작된다. 술과 담배를 끊은 에드문드의 따분함을 조롱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아내 메그다 역시 멤버들에게 살갑게 굴지 않자 호의를 가장한 악의는 구체화되고 체계화된 폭력으로 변모한다. 이 소설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사건을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짙밟는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사소하고 하찮은 장난과 언어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이다. 주인공 리가 고향인 인디애나의 작은 동네 알링턴 힐스를 찾으며 시작된다. 그에겐 행복하지 않은 기억만이 잔뜩 있는 고향집을 팔기 위해서였다. 노망이 난 어머니는 양로원에 있고, 매달 어머니를 돌봐주는 윈에게 돈만 보내고 있다. 리는 윈의 절대적 호의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으나, 결국 그는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리는 자신의 삶의 터전인 시카고로 돌아가 모든 일을 잊고자 하지만, 그를 배신한 이들에게 더 할 수 없는 비극이 차례로 찾아온다.
이 이야기의 기본적인 구조는 리와 어머니의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지만 그가 배신을 당하는 모든 이유와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어머니는 성경의 구약으로 상징된다. 복수와 질투로 점철된 그녀의 삶은 그녀가 즐겨읽던 성경과 닮은 모습을 가졌다. 리의 시선에서, 구약은 배타적이고 분노하며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폭력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 천사는 징벌자이다. 사무엘기에서 흑사병을 퍼뜨려 백성들을 죽이고 출애굽기와 이사야서에서는 신의 정의를 행한다는 명목아래 죽음의 천사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행되는 배신자들의 죽음은 그를 공포와 분노로 몰아간다. 작가의 기독교적 태도에 대한 회의는 책의 도처에서 나타난다. 단편 <네 삶을 경멸해>에서도 '기독교적 도덕성을 강조하지만 방어적인 부모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인디뮤지션 친구들 중에 누가 더 관대하고 기독교적이고 관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주인공 랠프의 의문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니, 그건 아니다. 예수가 한 말이다. 예수도 이것을 찬성하지 않았으리라. 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려다가 윈도 똑같은 몸짓을 했었던 것을 떠올렸다. - p.105
리는 서재로 가서 구약을 잡아 뜯고 벽난로에 던져버리지만 무력감에 빠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권선징악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많은 문학과 시와 노래와 영화에 투영되어 나타났다. 비단 구약뿐만 아니라 고소설의 대부분에서 빠질 수 없는 교훈은 사람을 해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소설은 이 밖에도 포의 작품을 읽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양이가 물어 온것>, 제목만으로도 흥미가 동하는 <노인입양> 등을 담고 있고 각각 다채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드러지는 점은, 등장인물 누구나 나약하고 비열한 부분을 저마다 안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에게 인간의 디폴트는 평범함 속에 추악함을 내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서늘하고 건조하지만 세련된 문체가 봄비로 우울한 4월의 하늘과 제법 어울린 단편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