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엔 글/Book Reviews

카와이이 제국 일본 - 요모타 이누히코

사월엔 2017. 7. 12. 00:55

 

<かわいい>論 - 요모타 이누히코

 

2000년,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던 나는 항상 일본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음악과 일본 문화도 여과없이 그야말로 흡수했고, 그 덕인지 일본어를 습득하는 것도 빨랐다. 중국이나 호주에 있을땐 사람들이 나를 일본인으로 생각할 정도로 일본어를 잘했고, 그 말은 즉 그만큼 일본적인 행동에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다시 일본을 접했을때, 나의 시선이 변한만큼 일본도 많이 변해있었다. 일본에 대해 지식은 나름 많았지만, 내가 모르는 일본의 모습이 너무도 많아 낯설고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카와이이 천국 일본은 여성을 소비의 주체로 전락시키는 일에는 빠삭하지만 인격의 주체로 생각하는 일은 서툴다. 일로 만난 일본의 비지니스맨들조차 다 큰 여성으로 동등한 위치인 나에게 너무 쉽게 반말을 하고, 조언을 하고, 귀엽다는 말을 던진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범위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격하시키는 AV와 성인용품부터, 카와이이만이 여성의 진짜 가치이며, 좋은 여자가 되기 위한 '오모이야리'라던지 '키쿠바리'조언같지 않은 족쇄를 매일 어린 아이부터 큰 여성에게 누구든 던질 수 있고, 아무도 그게 상처가 되는 말이 되리라는 꿈도 못꾸는 국민들.

 

죠시료쿠라는 말로 포장되어 여성에 강요되는 폭력과 자유와 개별을 억누르고 부끄러운 일로 만들어 그 어디보다 변태적인 표출이 성행하게 되는 이상한 나라. '부락민'등으로 대표되는 카스트제도 만큼 견고한 계층적 서열과 차별을 안고 있으면서도 밖으로 보이지조차 않게 면밀하고 치밀하게 자행되는 야만과 왕따의 나라.

 

나는 일본을, 그 언어와 문학과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을 이해하기에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그들의 맹목적인 소녀의 숭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I. 카와이이란 무엇인가

 

카와이이 현상

 

카와이이는 일본발 세계 도처에 만날 수 있는 현상으로 자리 잡았고 수조억엔이 넘는 캐릭터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작고, 허술하고, 지켜주지 않으면 금세 부서질 지도 모르는 취약성을 가지는 동시에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 몽상으로 이끄는 것. 어떠한 평범이나 설령 추악함 마저도 카와이이의 가루가 뿌려지면 금세 친밀감이 넘치는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한다.

 

카와이이라는 굴레속에서 귀엽지 않으면 여자가 아닌 일본의 강압성속에 비추어진 여성에게 카와이이는 생존 전략을 위해 늘 채용해온 교태라는 주장과, 일본 고유의 아름다운 '이키'의 행동원리로서 21세기 일본의 미학으로서 추앙하는 주장이 교차하는 가운데 일본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카와이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 알아보자.

 

카와이이의 변천

 

카와이이かわいい의 어원은 카오하유시かほはゆし로, 카오かほ+하유시はゆし가 결합된 단어이다. 하유는 하에루映える에 해당하는 고어로서, 비추다, 빛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물에 비친 빛처럼 한층 빛나고 생기있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따라서 가오하유시란 얼굴이 흥분해 발그레해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었고, 현재의 모에萌え와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카오하유시는 카와유시로 변형되었고, 처음으로 고헌에 등장한 것은 12세기 헤이안 후기의 설화집, 今昔物語集에 실려 있는데,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은 무척이나 가엾다'는 의미에서 카와유시가 사용되었다.

지금의 카와이소우可哀想와 같은 의미로서 딱하고 가엾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당시의 귀엽다, 사랑스럽다를 의미하는 말로는 우츠쿠시うつくし(현재는 아름답다라는 의미) 를 사용했는데, 귀족어였던 이 단어는 중세시대 신흥 세력 속어에 떠밀려 났는데, 이 과정에서 가와유시의 딱하다, 불쌍하다라는 의미는 차츰 사라지고 현재의 귀엽다라는 의미가 우세해진다. 그리고 불경에서 차자해 카와이이로 표기하기 시작한다.

 

 

 카와이이에 상응하는 외국어

 

영어나 우리말로 카와이이를 번역할 때 일반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은 cute:귀엽다, 우츠쿠시이는 beautiful: 아름답다 정도일것이다. 카와이이의 영어역이 cute라는 점에서 저자는 카와이이와 cute는 일견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카와이이의 어원은 위에서 알 수 있듯, 딱하고 보호하고싶은 불쌍한 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영어의 cute의 어원은 라틴어 acute로 거슬러 올라간다. 뾰족하고 예리하거나, 재능이나 기지가 뛰어나 빈틈이 없다는 의미로서, 18세기 cute는 영리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19세기 이후에나 강아지나 아이들을 'cute'라 지칭하는 용례가 발견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일본인의 인식으로서 카와이이의 반대말로 '예리하다' ' 샤프하다'등을 떠올리는 점에서 카와이이와 cute사이의 간극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II. 카와이이의 본질 

 

카와이이의 정치성

 

저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카와이이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 중 흥미로운 부분은 카와이이가 가지는 젠더 이데올로기다. 카와이이라는 정의를 바탕으로 남녀학생은 명백한 차이를 두고 있는데, 단답형인 남성에 반해 구체적인 그림과 예시를 가지는 여성이 많았다. 결국 여성에게는 카와이이를 둘러싼 일생에 거친 학습과 고찰의 결과라는 결론에 이르는데, 여성에게 카와이이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가 주목한 점은 남성이 카와이이라는 말을 듣는 경우는 ''어린 시절'이나 '예기치 못한 실수'를 하거나 '여성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을때, 혹은 '연상의 연인'등에서 라는 답변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인식을 뒤흔들어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 되는데, 이는 카와이이에 숨겨진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카와이이의 속성은 남녀를 불문하고 그 단어 자체가 지닌 정치성과 권력적 속성을 드러내는데, 카와이이에는 상대를 나보다 어리고 유약한 것으로 인식하는 지배적인 태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카와이이

 

카와이이의 반대말로서 약 18%의 일본인은 우츠쿠시이, 키레이, 쿠-루 등의 긍정적인 형용사를 들었다. 이는 카와이이에 함유된 미성숙, 일상성, 유약성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이 반대에 있는 우츠쿠시이에는 성숙함, 고귀함, 숭고함에 대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카와이이와 우츠쿠시이의 대립양상은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도로, 롤랑 바르트는 신화학 연구에서 오드리 햅번과 그레타 가르보를 비교하며 헵번이 '실제의 차원에 있는 개성화된 사건의 얼굴이며, 본질적인 것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이고, 그레타 가르보는 '일종의 플라톤적 이데아로서 다다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단념할 수도 없는 일종의 절대적 육체'라고 말했다.

 

즉 카와이이는 신성함이나 완전함, 영원따위와 대립하고 표층적 존재로 덧없이 변할 수 있는 미성숙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결점이야 말로 친근하고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심리적 친근감이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카와이이와 키모카와

 

키모카와는 2000년대 초반 만들어진 유행어로 키모이+카와이이의 합성어다. 이 단어는 왠지 기분 나쁘지만 자꾸 보면 정이 가는 것, 징그럽지만 익숙해지면 귀여운것, 징그러울 정도로 강렬한 귀여움을 가진 것이라는 감각의 양의성을 강조하는것이다.

 

저자는 이 단어의 정의로서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생생히 살아있고, 모성 본능에 호소하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라는 의견을 피력하며,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역겨움에 대한 아브젝시옹(abjection: 밀려남과 밀어냄을 동시에 포함하는 단어로, 쪼개지고 갈라지고 분열된다는 의미. 자아를 구성할 때 반드시 추방되거나 제거되어야 하는 존재인 비체를 추방하고 자아의 청결 상태/통일성을 추구하는 행위) 과 모성의 무의식적 결합'이라는 해석을 제시한다.

 

아울러 기모카와는 '그로테스크한 골계'이며, 카와이이와 그로테스크는 일견 반대의 구도를 가지는것 같지만 사실 양자는 서로 많은 부분이 겹쳐져 견인하고 의존하며 성립한다. 저자는 그 논거로 프로이트의 <섬뜩한 것(Das Unheimliche)>라는 논문에서 '여성의 성기의 섬뜩함?'이라는 의문을 인용한다. 이는 여성의 성기는 본래 자신이 태어난 기원의 장소이지만 그 사실이 억압되고 은폐되어 친밀감이 반전되어 섬뜩하게 여기게 된다는 것인데, 이 인식을 원점으로 그로테스크한 것이라며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의 배후에는 무의식적인 억압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숨겨지고 봉인된 것이 다시 의식으로 회기 할 때 그것이 기분나쁜 섬뜩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편 디즈니의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일곱 난쟁이나 E.T, 토토로 등은 전형적인 귀여운 것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잘 살펴보면, 항상 귀여운 것들은 큰 눈에 불균형한 신체 구조, 짧은 팔 다리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신체적 결핍으로서 기형적 형상을 띄고 있다. 재미있는것은 규범적 신체에서 결손된 경우만을 가르키고 과잉되는 경우는 카와이이 범주에 들 수 없다. 이는 이런 결핍된 존재가 위협적이지 않고 안전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로테스크와 카와이이

 

1970년 자살한 미국 사진가 다이앤아버스는 형실에 존재하는 난쟁이나 어린아기들, 쌍둥이 소녀들등을 피사체로 선택해 세상이 그들에게 덧씌운 '카와이이'라는 굴레를 벗겨냈다. 아이들은 '순진무구'함과 같은 일상적으로 부여된 귀여움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비추어 진다. 작가는 이런면을 예로, 카와이이의 본질은 키모카와, 즉 그로테스크 한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카와이이의 대표주자격인 봉제인형의 경우는 단적으로 말해 과도하게 인간화된 동물의 이미지로서 약자 특유의 아우라가 응축되어 있다. (큰 눈, 모자란 입매, 무방비한 퍼진 자세 등) 이는 순수하게 인간화된 동물로서 배설물, 악취, 소음과 같은 불쾌한 요소가 제거된 취약하고 보호를 부르는 모습이며, 이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미'보다는 동정심을 환기시키는 '그로테스크'에 더 가깝다.

 

실제 아기나 애완동물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귀엽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들에게 부여한 '카와이이'가 보증하는 청결함, 기분 좋음, 심리적 안도감 때문에 실제 존재자체가 아닌 그 존재가 주는 카와이이한 이미지에서 사람들은 '카와이이'를 느끼는 것이다. 즉 길거리에서 본 아기나 애완견에게 카와이이라고 말하는 것은 개별 존재가 아니라 봉제인형 따위에 투영된 아기라는 관념에 바탕한 의례적인 말이며, 일반적으로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III. 카와이이의 양상

 

미니어처와 노스탤지어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예로 보아도 알겠지만, 일본은 작게 만드는 '미니어쳐'에 공을 들여온 민족임이 분명하다. 작가는 이런 미니어쳐 문화에 대해 수잔 스튜어트의 <동경론(On Longing)>을 예로 논의를 전개하는데, 미니어처는 궁극적으로 인공적 산물로서 실재하는 거대 물체에 환유의 조작을 가함으로서, 본체가 속한 현실 세계로부터 차단되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엄밀히 유지되어 현실과 자아를 잊을 수 있는 일종의 안전지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서양에서도 16세기 무렵 성서등을 미니어쳐 북으로 만드는 것이 유행했는데, 이는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책이란 우주의 모형으로 전체성이 담겨있으며, 축소를 통해 훨씬 강력한 모습으로 자기 안에 전 우주를 체현하는 것으로 간주해 왔다. 또한 미니어처는 그 공간성 뿐만 아니라 시간을 동결시켜 버리는데, 특정 순간을 포착하여 고정시킨 피규어등은 그 무시간성을 소유하는 특권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고 섬세하게 장식된 내계를 응시하고 무시간성속에서 관계성이 배제된 순수한 시각적대상으로 마이크로코스모스를 창조하는 것. 오래전 상실한 세계의 중심을 허구의 바탕 위에 재구축 하는 것이 피규어나 돌하우스, 스노우돔 같은 수집품에 숨겨진 순간에 대한 소유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소유욕은 노스탤지어(Nostalgia)에 대한 욕망으로도 이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그러하듯 일본에서도 '가난하지만 티없이 아름답게' 살아가던 시대를 그린 매체가 호평을 받고 있는데,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에 말을 빌리자면 "노스탤지어야말로 후기 자본주의 문화 이미지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흘러가버리는 시간의 파편을 잡기 위해 인간은 물질에 의존하고, 이는 관광지의 선물이나 어린시절의 사진과 같은 모양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저자는 이를 소비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소비자인 개인의 내면을 후천적으로 형성해가는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한편 더 나아가 노스탤지어의 어두운 면을 내비치며 과거를 미화하고자 하는 정열이라고 정의하고 역사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한다고 지적한다. 이 강력한 그리움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인대가 한 차례 끊어져야하는데, 일본에서 대동아 전쟁을 정당화하는 역사 교과서가 편찬되기까지 전후 반 세기라는 시간의 단절이 그 기억을 풍화시키고 미화하는 노스탤지어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자크 라캉은 이런 노스탤지어의 특징을 일러 " 상징은 사물을 죽이는 형태로 나타나고, 죽은 것만이 주체의 안에서 욕망의 영원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성숙함에 대한 동경

 

유년기는 순수함 그 자체라는 신화는 서구에서 만들어낸 거대 신화로, 아이는 어른의 미니어처다. 그러나 서구사회에는 성숙이라는 스탠다드에서 미성숙이란 성숙으로의 과정에 불과한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일본에서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미성숙한, 개화하기 전의 것이야말로 가치있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인은 서툴더라도 미완성인 것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스스로를 아이같은 이미지로 만들어 주위에 투영하고 제시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일본의 맥락을 세일러문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분석해 보여주는데, 매우 흥미롭다. 어수룩하고 울보인 중학생 츠키노 우사기는 자신이 달의 공주이며 수성, 화성, 목성, 금성의 친구들과 힘을 모아 함께 악의 무리들로부터 지구를 지켜내기로 결의한다. 우사기에게는 마모루라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는 밤에는 턱시도 가면으로 활약하며 위기에 빠진 세일러 문을 구한다. 이런 내용은 일본과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히어로물+마법 소녀물의 스토리 라인에 불과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소녀들이 변신 후 펼쳐가는 활약상보다 악의 무리 앞에서 행하는 그녀들의 변신 자체에 크게 역점을 둔다는 점이다.

 

또한 악의 무리로 등장하는 적들의 상당수는 아직 미성숙한 세일러복(=교복)의 전사들의 몸과 달리 풍만한 가슴과 파랑, 빨강, 노랑, 하양의 원색의 피부를 가지고 대개 반라의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하여 지구를, 혹은 환유적 존재인 마모루를 덮친다. 세일러 문에서 성숙하고 성적인 존재들은 악이 되는 것이지만 반대로 우사기는 소녀의 미덕을 갖춘 카와이이=선의 모습을 한, 아직 젠더의 구분이 모호한 미성숙한 소녀들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미성숙에 대한 동경은 서구의 문화에선 변태적이고 병적인 행위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각광을 받고 여과없이 보여지고 향유되고 있는 점이 특별하다.

 

 

 

IV. 마치며

 

<가와이이 제국 일본>에는 이밖에도 카와이이문화가 일본의 자본주의에서 어떤 모습으로 '여성다움'을 만들어가는가, 그리고 카와이이의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이 내용만으로 나의 일본에 대한 궁금증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더 크다. 그러나 상당부분 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한번 국화와 칼이나 축소지향의 일본인과 같은 저서를 읽고 생각해볼 문제들이 많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