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엔 영화

연인, The lover, L'amant 1992

사월엔 2018. 3. 15. 17:03

 

 

베트남 여행을 앞두고 사이공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찾다가 연인이 떠올랐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은 예전 대학생시절 자주가던 카페테리아에 포스터가 걸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흑백에 오묘한 소녀의 모습과 붉은 립스틱. 2018년 비오는 오후에 본 그 영화는 나에게 매우 다양한 감상을 가져다 주었다.

 

영화의 제목은 누구든 부정할 수 없는 연인이다. 원작 소설의 제목부터 프랑스어로 연인, 영어 제목도 The lover이며 한국어 제목도 오역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확실한 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고 싶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는 그녀는 그를 사랑한 적이 없다. 그녀는 식민지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몰락한 프랑스인 집안의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와 아편중독의 장남과 함께 살아가는 소녀이다. 15살 반의 그녀는 이미 늙어버린 영혼을 가지고 메콩강을 바라보며 진흙탕 같이 한치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학교에서 그녀와 단 한명밖에 없는 백인 친구는 나병환자를 돌보느니 매춘부가 되겠다고 말한다. 그렇다. 가난한 그들의 선택권은 단 두가지 뿐인 것이다.  

 

결국 소녀는 매춘을 택한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독신남의 방'으로 데리고 왔을 때, 자신의 몸을 탐하도록 한다. 미성년에 대한 성 결정권이 이런 부분에서 보호되야 하는 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성이 가진 가치와, 자신에게 남겨지는 위험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가 그녀와 섹스하는 부분은 마치 인디언 땅에 와서 계약서를 들이대고 그들의 땅과 생명과 터전을 앗아간 제국주의의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애초에 불공정하고 졸렬하며 야비한 행위인것이다. 30이 넘은 중국인 남자가 15살의 그녀가 원했기에 섹스를 한다는 것은 말이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서로로 채웠다. 소녀는 쾌락에 눈을 떴고 그가 제공하는 호의를 즐겼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그를 사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a whore'이라고 불러도 개의치 않았고, 돈만을 원했다는 것이라고 그가 생각하는 것도 상관이 없었다. 마지막 알렉산더 뒤마호를 타고 파리로 향하던 소녀가 달빛아래에서 쇼팽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우리나라 자막에는 마치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을 깨닳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원문을 보면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She had wept because she had thought of that man from Cho Long, her lover, and suddenly she was not sure that she hadn’t been in love with him after all, with a love she hadn’t been able to see because it had become lost in the tide of events, like water seeping through sand.

그녀는 울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의 연인, 초롱(Cho Long)의 그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그를 결국 사랑했던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는데, 그 사랑은 밀려온 파도에 쓸려 모래 위에서 잃어 버리고 마는 그런 것과 같아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작 소설이 어떤 느낌인지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녀가 그에게 감정적 거리감을 두는 것은 나레이티브에서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서사한다. 자신의 외모와 가족, 엄마와 꿈에 대해 이야기 할때에도 자신을 가르켜 I'm fifteen and a half라고 정확히 묘사한다. 그러나 그와 처음으로 성적인 관계를 맺을 때도, 그에 대한 상념을 이야기 할 때 자신을 타자화 하여 3인칭 She로 지칭한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성적 트라우마를 겪은 많은 이들이 그 날의 경험을 타자의 경험이나 영화의 장면처럼 기억을 왜곡 시켜버리는 그런, 일상적인 태도처럼 말이다.

 

She's too little that he can't do such a thing. So she's the one who does it.

 그녀는 너무 어려서 그가 그런 짓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직접 했다.

 

 

 

그들이 사랑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두번째 이유는 '그'이다. 그 또한 그녀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그는 평생 일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침대에만 누워 강압적인 명령만을 내린다. 그는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이 약속되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래를 왜 살아가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며 소녀와 마찬가지로 진흙탕 같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소녀가 아니었다. 그는 도피처나 마치 자신에게 살아갈 이유를 줄 수 있는 어떠한 존재를 갈구했다. 소녀가 메콩강을 건너는 배를 타고 있을 때, 부유한 그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는 그녀를 사이공까지 태워주며 차안에서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손을, 그녀의 허벅지를 탐한다. 마치 이것이 관능적으로 그려지는 점이 나에게는 매우 역겹다. 그의 손의 떨림이 역겹다. 초등학교 5학년, 버스에서 내 허벅지를 쓰다듬던 아저씨의 손도 그렇게 떨렸다. 그건 '사랑'이나 '설렘', '열정'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러운 '욕정'과 금기에 대한 도전이 주는 역겨운 '흥분'일 뿐이다.

 

그는 그녀와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그녀가 자신의 돈만, 쾌락만을 원하는 소녀를 발견했을 때 그는 안도하면서도 절망한다. 그가 고통이 무엇인지 깨닳은 것은 소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무력함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소녀는 이제 더이상 그에게 의미가 없었기에 그녀가 떠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아편으로 떠났다. 눈 앞의 실체로서 인간인 소녀가 아니라, 그녀가, 그리고 그녀의 몸이 줄 수 있는 쾌락과 안도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녀가 눈 앞에 있을 때도 이미 그에겐 없는 존재가 되었다.

 

다 자라기도 전에 스스로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여성의 몸을 취하고 그녀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마치 그녀가 구세주나 성녀라도 되는 것 처럼.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에 농락당하고 그에 몸 바친 순정남으로 둔갑시키는 험버트식의 철저한 남성중심의 서사. 너무나 반복된 이 클리쉐에 어찌 반응 할지 몸들 바를 모르겠다. 만약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사랑의 의미는 이미 나에게 퇴색 되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작이 여성에 의해 씌여졌다고 여성 중심의 서사인 것은 아니다. 그 여성 또한, 아니 우리 모두 이미 가부장과 남성 서사에 길들여져 있고 그런 사고에 익숙해져 있음을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제작 당시 원작자와 아노 감독과 갈등이 많았다고 들었다. 소설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추가 -  소녀를 연기한 주연 Jane March(제인 마치)는 영국인 아버지와 베트남계 중국인 혼혈이다.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난 그녀는 14세에 모델이 되고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의 히로인으로 발탁되었다. 18세가 되기도 전에 파격적인 누드신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남자 주연 배우였던 양가휘와 영화의 정사 장면에서 실제로 섹스를 했다는 거짓 루머가 계속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녀는 2004년 인터뷰에서 "내가 양가휘와 실제로 잤다는 주장은 매우 역겨운 소문( a disgusting allegation)이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이 그 거짓 소문에 큰 기여를 했는데,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서 였다. 나는 이용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 소문이 거짓이라고 끝내 밝히지 않았다....내가 세상 어디를 가든, 그 소문은 나를 따라 왔다." 라고 밝혔다.

 

 

그 이후 그녀는 2년만에 처음으로 받은 부르스 윌리스와의 에로 스릴러 Color of Night를 찍었고, 물론 정사신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의 커리어와 장 자크 아노 감독과의 소문은 영화계가 여성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파격적인 신인 여배우의 노출과 소모된 후 버려지는 전형적인 사례같다. 그녀와 실제로 영화에서 정사를 나누었다는 양가휘의 경우에는 그런 소문으로 커리어에 영향을 받지도, 노출만 있는 영화에 스크립트만 받지도 않았다.

 

그녀의 이름을 구글에 치면 청소년 유해물 인증이 뜬다. 그녀의 삶 자체가 사이공의 어린 소녀와도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