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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사월엔
<민족주의 - 장문석> - 비타 악티바 개념사 본문
장문석 지음
저자 이력 - 서울대 서양사학, 동대학원 석사와 박사. 현재 영남대 사학과 교수, 19, 20세기 이탈리아 기업사와 지성사를 중심으로 민족주의, 파시즘, 유럽 통합등 서양 현대사 전공
밑줄
사견
1. 민족의 개념
1-1 민족의 어원
애당초 나티오는 출생과 관련된 개념이었다. 키케로는 또한 유대인과 시리아인을 가리켜 "노예로 태어난 민족들 nationes natae servituti"라고 묘사했는데, 이 역시 나티오가 출생의 공통성으로 묶인 집단임을 암시한다. 단 이 경우에 나티오는 로마인의 입장에서 외국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로마인이 보기에 외국인은 생김새도 묘하고 입는 옷과 먹는 음식도 별나다는 점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코믹한 존재였다. ... 당시에 긍정적인 용어는 나티오가 아니라 포풀루스populus였다. ...고대 로마에서 '로마 원로원과 인민'이라는 뜻으로 쓰였던 로마자 약자인 SPQR의 'P', 즉, '인민'에 해당하는 것이 포풀루스이다.
영어의 native에 해당하는 어원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쉬워지는 것 같다.
중세 유럽에서 나티오는 여전히 외국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의 동향 집단이나 공의회의 동향 출신 대표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동향인들은 대체로 특정 안건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갖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이 경우에 나티오는 일종의 의견 공동체를 뜻했다. ... 예컨데 17세기 잉글랜드 내전을 전후한 시기에 네이션은 대귀족과 젠트리등 특권적 엘리트층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민족 political nation을 뜻했다.
이와 같이 코믹한 외국인을 지칭하던 나티오/네이션이라는 말의 액면 가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상승했다. 그러나 상승하는 것이 있으면 하락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포풀루스라는 말의 경우가 그러했다. 포풀루스는 종래의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단, 즉 주권적 존재라는 의미가 유지되면서도 의미 변용이 일어나 도둑놈이나 파괴자를 뜻하는 부정적인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즉 억압받는 금지 구역에 속한 하층민이나 주변인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포풀루스의 의미가 생성된 것이다. 이로써, 정치 철학자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 이 <목적 없는 수단,1996> 이라는 저서에서 매우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포풀루스라는 개념 속에서 *주권적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내전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명함에 포풀루스가 아니라 나티오라는 명칭을 새기고 싶어 하게 되었다.
*주권적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아감벤에 따르면, 주권적 권력은 본질적으로 예외 상태를 선포할 수 있는 존재로서, 법의 외부에 위치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법의 지배를 선포한다. 그런 점에서 주권적 권력은 법치와 폭력, 정상 상태와 예외 상태가 구별되지 않는 영역에 존재한다. 한편, 벌거벗은 생명이란 그러한 주권적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의 보호 바깥에 있는 예외 상태의 존재이다. 근대의 주권적 권력은 국민의 신체와 건강을 직접 다루는 생명 정치로서, 벌거벗은 생명을 양산한다고 할 수 있다.
포풀루스와 주권적 권력과 탄생의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나티오/네이션이 주권적 권력으로서 탄생했고 포풀루스를 벌거벗은 생명으로 전락시켰다는 의미 인걸까..??
18세기 무렵, 민족 담론의 폭발을 목격할 수 있는 바로 그 시대인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에 고등법원parlemen이 왕에 대해 나시옹을 대표하며 나시옹에 대해서는 왕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면서 민족 담론의 유포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프랑스 혁명기에는 의회, 방위대, 교육, 경제 등 모든 말에 나시옹의 형용사형인 '나시오날' 이 붙으면서 민족 담론이 만발했다. 다만 유념해야 할 사실은, ...당시의 네이션에는 현재의 네이션과는 사뭇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사실은, 근대 초기에 네덜란드와 영국 등의 내전(혁명) 을 거치며 네이션이라는 말에 정치적 의미가 부가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요컨데 자연적 인간(원래의 나티오)이 정치적 시민 (혁명적 나시옹)으로 진화한 것이다.
상상의 공동체와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이 해결되는 지점이다. 근대에 발현했다는 민족주의의 민족은 혁명적 나시옹이자 정치적 시민으로서 길러지는 이데올로기를 의미하는 것이지 자연적 인간으로서의 나티오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구별될 때 민족주의 담론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1-2 민족의 정의
근대 민족이라는 말은 '동그란 원'처럼 일종의 동어 반복이다. 원이 본래 동그랗듯이, 민족은 본질적으로 근대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권 선언에서 말하는 나시옹과 키케로가 말하는 나티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키케로의 나티오는 외국인이지, 주권적 국민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나티오는 민족이 아니며, 나티오와 나시옹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그러나 의미론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티오와 나시옹의 언어 형태학상의 유사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민족주의와 종교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가 그로스비는 민족주의에서 '민족'이라는 용어를 과거와 현재에 계속 사용한다는 사실이 '민족'으로 지칭되는, 영토에 기초한 비교적 단일한 문화가 상당 시기 동안 지속되고 있음을 강력하게 암시한다고 보았다. ... 그러므로 나티오와 나시옹은 모두 민족이다. 다만, 나티오는 문헌상에 나타나는 당대의 표현으로 기술적 용어로서의 "민족"이요, 나시옹은 근대적 의미 규정이 확립된 분석적 용어로서의 민족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정의 하려고 하는 민족이란 "민족"과 민족을 아우르는 양자 편균값이다.
오늘날 민족은 주변인도 아니고 엘리트도 아닌 주권적 대중이다. 그러나 이 '대중 민족'은 사실상 이상형에 불과하다. 역사상으로 볼 때, 대중의 중요한 일부인 노동자와 여성, 소수 종족 등은 오랫동안 민족의 정치적 권리에서 배제되어왔다. 만일 우리가 민족을 완전한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의 견지에서 대중 민족으로 이해한다면, 19세기의 영국과 프랑스도 아직 민족이 아닐 것이다. 1832년만 하더라도 영국은 전체 인구의 3.2%만이, 프랑스는 1.5%만이 투표권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형식적 평등권이 인정된 후에도 의연히 실질적 차별이 이루어져왔다. 그러니 '대중 민족'이라는 말은 '네모난 원'처럼 일종의 형용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이 본래 네모가 아니듯이, 민족도 원래 민주주의 시대의 대중이 아닌 것이다.
역사 속에서 '대중 민족'을 찾는 사람에게 민족은 곧 '근대 민족'이다. 이렇게 되면, 대중적이지 않고 근대적이지 않은 민족은 선험적으로 배제되고 만다.
근대적 정의로서 정치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 문화 체계를 공유한 대중을 민족이라고 이른다면 이는 인권 선언에서 아우르는 민족과도 다르다. 나시옹과 나티오, 네이션을 모두 하나의 민족으로 번역해버린다면 이는 이 모든 개념들과 내포된 역사적 맥락까지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민족"이든 민족이든 민족을 정의할 때 중요한 단서는 민족이 출생과 밀접하게 관련있다는 사실이다. 민족은 기본적으로 공통의 조상과 영토에 기초한다고 여겨지는 사회 집단이다.
그러나 민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신되고 공간적으로 확장되며 변화/발전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민족의 전통도 수정되고 변용되는 것이다. 이상의 맥락에서 민족은 일단 영토적인 혈연 공동체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로스비Steven Grosby의 간명한 정의에서 출발하자면, 민족이란 "혈연 공동체, 특히 구획되고 영토적으로 확장되며 시간적으로 깊이 있는 원주민 공동체"인 것이다.
그로스비의 정의에서 중요한 점은 구획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민족이란 자연발생적인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구획되고 기획되어 영토적, 역사적 (시간적) 연고를 공유하는 공동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로스비는 확실히 민족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로 간주한다. 이때 혈연과 영토 등이 민족적 유대 관계의 존립을 좌우하는 객관적 요소들이다. 그 외에 언어와 종교 등도 민족 집단의 형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객관적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러한 정의의 대표자로 스탈린을 들 수 있는데, 그에 따르면 민족이란 "언어, 영토, 경제생활 및 문화 공동체 안에 구현된 심리 구조 등을 지닌 역사적으로 진화한 안정된 공동체"이다.
그런데 민족은 역사적으로 진화하고 공간적으로 팽창한다. ... 민족의 개개 구성원은 민족의 다른 구성원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하면서 같은 민족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앤더슨Benedict Anderson(1936~) 의 유명한 표현을 빌리자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이다. 그에 따르면, 16세기에 인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같은 종류의 신문과 잡지, 소설을 보던 주민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민족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 스미스Anthony D. Smith(1933~) 도 <민족의 문화적 기초- 위계, 성약, 공화국>에서 말하고 있듯이, 민족은 제도적 구성물이나 실체, 본질 따위가 아니라 민족 성원에 의해 "상상되고 의지되며 느껴지는 공동체", 즉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공동 운명체라는 감각과 종족성의 각종 신화와 상징을 공유하면서 형성된 문화적 친근함에 의해 규정되는 "느낌의 공동체felt community"인 것이다.
이로부터 민족은 객관적 요소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주관적 요소들에 의해서도 규정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찍이 19세기 르낭Ernest Renan은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 민족을 두고 "매일매일의 인민 투표"라고 정의해 민족이란 한번 구성됨으로써 영구히 안정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선택되고 확인받아야 하는 유동적인 생성체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시각은 무엇보다 그러한 상상의 주체를 전제로 한다. 또한 민족이 '느낌의 공동체'라면 먼저 스스로를 특정 민족에 속한다고 느끼는 주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주민은 서로 간에 강한 친밀감과 동질감을 느낄 터인데, 이는 그들 사이에 공유되는 생물학적, 문화적 공통성에 바탕을 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민족의 객관적 요소는 명백히 민족의 주관적 의지에 선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후에 유럽 각국에서 앞다투어 민족의 전통들이 발명된 것은 필경 상상의 공동체, 나아가 느낌의 공동체를 강화하려는 민족 국가들의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유럽 각국에서 각종 국기와 국가, 기념물과 의상, 신화와 영웅 등이 탄생했다. ... 이러한 전통 숭배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데는 필경 주권적 민족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조건이 작용했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민중이 일반 의지를 지닌 주권적 실체로 등장하고, 민중이 더 이상 신이나 왕을 숭배하지 않고 스스로를 숭배하게 되면서 민족이 일종의 세속 종교로 등장한 것이다.
수많은 민족 전통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창조된 것이다. ... 전통은 바로 그러한 상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가시화, 현실화해준다. ....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민족 전통의 역사적 사실성(혹은 허구성)을 밝히는 일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전통의 효과를 규명하는 일이다.
1-3. 민족 형성의 요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에 따른 국내 시장의 형성에 주목하여 민족 국가의 등장을 설명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면서도 그에 고유한 경제 결정론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카우츠키나 바우어처럼 언어 공동체나 운명 공동체로서의 민족이라는 문화적 개념을 추가하거나 앤더슨처럼 자본주의와 문화의 상관관계에 주목하여 인쇄 자본주의와 출판 시장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기도 했다.
헤겔이 간파한대로, 시민 사회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철저히 원자화된 개인이 경제 행위를 독립적으로 꾸려나가는 장, 그런 가운데 사적 이해관계들이 경합하고 쟁투를 벌이는 장을 말한다. 국가는 바로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조절하고 중재하는 기관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족은 원자화된 개인들로 이루어진 시민 사회의 통합을 유지하는 일종의 외연적인 틀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해서, 시민 사회의 '개인화' 경향은 개인들이 '민족'으로 호명됨으로써 다시 '총체화' 되는 것이다.
한편 경제적 차원보다 정치적 차원을 중시하는 논자들은 중세 이래 유럽에서 만연한 전쟁을 민족 형성의 주요한 요인으로 간주한다. 유럽 각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민중을 동원했고, 그런 과정에서 민족적 결속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비록 중세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기성의 왕국은 민족 형성의 얼개가 되었다. 특히 왕이 일정한 영토의 지배자로서 역내에 이른바 '왕의 평화'를 선포하면서 생명과 재산 등에 대한 개인 권리와 공공질서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법률과 법정 등 원형적인 형태의 국가 제도들을 갖추어나가는 과정은 민족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국면이었다. ...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양한 제도가 완비되어가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고한 권위체로 받아들여짐으로써 국가에 순응하는 국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민족 형성의 요인이 바로 언어와 종교이다. ... 그러나 종교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민족을 구분하는 확실한 징표는 되지 못한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묶이듯이, 하나의 종교를 공히 믿는 주민들이 여러 민족으로 갈라지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어와 종교가 민족 형성에 미친 역할을 무시해도 좋은가? 일찍이 프랑스의 위대한 역사가 블로크 Marc Bloch는 언어와 민족을 혼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언어가 민족의식에 영향을 미쳤음을 무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 확실히, 언어와 종교는 그 자체로 민족 형성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에 필요조건이었으며, 근대 민족으로 전환될 수도 있고 안 될수도 있는 근대 이전의 원형적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질료들이었다.
2. 민족주의의 개념
2-1. 민족주의의 기원
민족과 다르게 민족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하는 근대론자와 고전론자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 최근에는 기존의 주장인 근대론을 반박하고 중세나 그 이전에서 뿌리를 찾는 고전론이 유행아닌 유행을 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근대론자와 고전론자의 민족주의의 정의에 차이가 있고, 생산적인 논쟁을 위해서는 정의의 통일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근대 기원설: 민족주의를 인간의 생득적 의식으로 보는 원초론primordialism을 반박하고 민족주의를 역사적 구성물로 파악, 특히 전근대 시기가 아닌 근대에 나타난 구성물로 간주하는 근대론이 유력한 시각이었다. 1983년은 민족주의 연구사에서 경의로운 연구 결과가 많이 출간되었는데, 홉스봄, 앤더슨, 그리고 겔너Ernest Gellner의 <민족과 민족주의>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겔너의 입론은 민족주의는 오직 산업 사회의 맥락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원리... 노동의 호환성, 즉 직업적, 사회적 유동성이 보장되는 것이 산업 사회를 존립시키며 이것이 민족주의 발현의 필수 조건이다. 그러므로 산업 사회에서는 반드시 문화적 표준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며, 이전 시대의 고급문화가 민족 문화로 바뀌면서 표준화된 민족 문화의 영역이 곧 민족의 경계가 된다. 이와 동시에 민족의 문화적 경계와 정치적 경계를 일치시키려는 민족주의의 정치 원리가 등장한다... "고급문화가 사회 전체에 침투하고, 사회 전체를 규정하며, 특정한 정치체에 의해 지지될 필요가 나타난다. 그것이 민족주의의 비밀이다."
키트로밀리데스는 근대 국가의 정치적 논리야 말로 민족주의 발현을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19세기 초반 산업 사회가 미발달한 상태의 그리스가 민족주의 발전을 경험했다는 사례를 들며, 일련의 민족 해방 투쟁을 거쳐 1830년에 등장한 그리스 독립 국가는 자국의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며, 이 과정에서 그리스 민족주의가 고양되었다.
근대 국가와 민족주의의 역사적 상관관계: 역사사회학자인 틸리..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국가 제조자, 지방 엘리트, 민중 사이에 벌어진 복잡다단한 갈등과 협상의 과정을 통해 주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민중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또한 17~18세기 유럽에서 만연했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는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추출하는 데 주력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 제조자는 민중의 협력을 얻는 대가로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고... 그럼으로써 민중은 국가의 정치 구조와 정치 생활에 점차 편입되기 시작했고, 종내 '민족'의 이념으로서 민족주의가 그러한 정치 통합을 정당화하게 되었다. ...즉 민족 형성의 과정이란 곧 국가 구성의 과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근대론은 민족주의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고 '피와 흙'의 정서에 호소함에도 불구하고 실은 최근에야 등장한 역사적으로 새로운 현상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하지만 근대론은... 민족주의가...인위적으로 구성된 실체라고 보는 만큼, 민족주의를 쉬이 해체될 수도 있는 어떤 것, ... 현실과는 동떨어진 추상적 이데올로기나 정치 강령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드러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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