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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중국사 수업: 1.형성기-상나라와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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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중국사 수업: 1.형성기-상나라와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사월엔 2018. 5. 14. 00:33

1장 형성기 : 역사의 시작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1. 석기 시대 중국

 

*기원전 5000~4000년경, 신석기 시대 오늘날 중국 대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짐 (i.e. 대표 주거지양사오/룽산등)

 

초기 중국인 공동체들은 다른 공동체들과 대조적으로 세계와 인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였으며, 초자연적 설명이나 신성한 창조주는 필요하지 않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이 세계가 인간 친화적인 공간이며, 문명의 진보는 신이나 창조주가 아닌 인간이 직접 일궈 낼 거시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낙관적 휴머니즘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상과 문화의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낙관적인 휴머니즘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상과 문화의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는 비극 작품들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매혹,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질투의 하나님 그리고 인도 신비주의자들이 정교하게 짜 놓은 형이상학적 이론들과 현격한 대조를 보인다.

 

 

*초기 국가 개념: 군주=부모, 국가=한가족으로 초기 세 성군(요, 순, 우)의 전설 이후 '하(夏)왕조'의 시작 (B.C. 2200~1750)

 

 

2. 상商나라

 

*하 왕조는 상(商)나라에 정복으로 멸망, 상은 약 700년 통치.

 

*93년도에 상 왕조의 실존을 허난성의 안양에서 발굴한 (갑골문자) 고고학적 증거로 입증에 성공함. 정교한 청동기로 유명한 왕조.

 

*고도의 신분사회였으며 당시 존재했던 다른 문명과 달리 한자를 이용하여 유일하게 문자를 가지고 있었음. 한자는 상 왕조에 뿌리를 두고 중국의 장구한 역사에 걸쳐 대륙을 하나의 정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데 크게 기여.

 

*지배층은 조상 숭배에 대단히 관심, 저승에도 신분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가장 높은 권력자는 '상제上帝'로서 제사를 지내 조상을 기림.

 

*상나라의 실제 통치 범위는 불명하지만 그 기술들이 쓰촨성 부근까지 미쳤다고 추측됨. 최근 위구르 자치구의 티클라마칸 사막에서 백인 미라 수백 구가 발굴되었는데, 이것으로 기원전 2000~500년 경에도 이미 중앙아시아에 백인이 살고 있었으며 켈트족 계통 유럽인이 사용하는 격자무늬 천도 출토되었음.

 

*상나라는 광범위한 지배지역을 통해 타 문화를 수용하고 있었음.

 

 

3. 주周나라

 

*기원전 1045년 상나라의 서쪽에 하늘을 숭상하는 주족이라는 봉신이 상나라의 수도를 정복하는데, 하늘이 상나라 정복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는 천명(天命)의 기원.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기록을 남기며 상나라의 많은 기술(청동기)과 체계(고도 신분제) 계승. 이 두 국가는 느슨한 국가로서 국경선이 모호하고 상이한 민족간의 협력도 느슨했으며, 조세나 공식적인 관계보다는 선물과 의례 교환에 바탕을 둔 동맹 체제로서 존립.

 

*주나라는 탈중심적 봉건 제도를 실시, 제후(혈연/혼인 관계에 기초한 일족)들이 주변부를 다스리며 주왕실에 정기적 세금과 군사를 바치는 제도.

 

*상나라에서 의미있는 진보 - 사람과 동물을 제사에서 희생하는 의식 사라지며 문자 기록은 정교해짐, 갑골문자는 역경<易經>등을 토대로 정교한 점술 체계로 대체.

 

*기원전 770년 두 제후에 의해 수도가 정복되어 주 왕실은 뤄양으로 탈출. 그 전의 호화로운 시기를 서주, 천도이후는 동주로 구분. 동주 시대른 춘추와 전국 시대로 나눔.

 

 

4. 춘추전국시대

 

*주 왕실은 남쪽으로는 초(楚), 북쪽은 위(魏), 서쪽은 진(秦)나라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좁은 지역에 고립되어 겨우 나라를 유지했으나, 결국 기원전 256년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소멸. 

 

*전국 시대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각국은 성벽, 제방, 수로와 관개 시설을 건설,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 하여 병사에게 군량 공급. 철이 보급되어 치명적 무기 개발이 가능해졌음. 

 

*초기 전쟁과 양상이 변화하여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냉엄한 모습을 보임. 

 

*기원전 8세기까지만 해도 적어도 148개 이상의 소국이 있었으나 400년경에 이르면 일곱개의 강대국 (전국칠웅戰國七雄)을 중심으로 경쟁이 지속. 

 

 

諸子百家

 

*이런 혼란 속에서 수 많은 중국의 사상가들이 경쟁국 사이를 오가며 당대의 핵심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으며 이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라 불리는 중국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시대를 주도. 

 

*법가法家 : 당대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이 큰 학파로서, 수백 년에 걸쳐 발전을 거듭. 법가의 학파를 적용한 진나라는 소작제를 폐지하고 농민에게 직접 토지를 분배하여 생산물을 세금으로. 농민을 징병하고 군인과 관료를 출신 성분보다 능력을 보고 등용. 처벌이 가혹할 수록 집행 빈도가 적어진다는 이론에 따라 가혹한 처벌을 담은 엄격한 법을 제정.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 태어난 공자는 당시의 사회 변화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고 군주들에게 주나라 초기의 신념과 관습 회복을 주장. 조상 숭배를 바탕으로 하는 자비로운 통치를 이상적인 비전으로 제시하며 이 비전이 군주들에게 채택되기를 바랐다. 인仁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그런 능력은 교육, 예법, 으리고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을 모방함으로써 육성되고 자극 받아야한다고 주장. 그는 군주가 백성의 충성심을 사기 위해서는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당대의 피폐한 시대상황에서 받아드려지지 않음.

 

*맹자孟子: 맹자는 공자이후 100년에 등장, 그의 낙관적 이상주의를 전파.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도덕과 예법은 폭력보다 더 효과적이며 올바른 행동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준다고 단언. 천명에 대해 맹자는 정치를 자연스럽게 바로 잡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서경을 인용하여 "하늘은 백성이 보는 대로 보고 백성이 듣는 대로 듣는다"고 주장. 왕의 첫번째 임무는 민생을 돌보는 것이라고 주장.

 

*순자筍子: 공자를 추종했던 또 다른 학자로 관리로 일하며 현실적인 주장을 펼침. 맹자와 대조적으로 공자의 사상을 재해석하여 당대에 적용했으며 업무 고과에 따라 관료의 승진과 강등이 결정되는 복합적인 관료제의 발전을 적극 지지. 맹자와 달리 인간은 본성으로 악하며  공자의 예법과 주나라의 초기 문헌이 백성을 교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여김. 보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뜻하는 효도가 다른 어떤 도덕적 가르침과 행위보다 가장 기본이 되어야한다고 주장. 현실적이고 합리주의적인 경향 중에서도 최전선에 있었으며, 본성과 본성의 작용에 대해서도 자연주의적 입장을 고수.

 

*묵자墨子: 국가 권력 강화형 법과와 주나라 초기 이상 부활과 예법을 중시한 유가를 모두 비판하며 군주가 백성에게 베풀어야 할 것은 정교한 의식이 아닌 의식주 등의 생필품이라고 강조. 가장 근본적 원칙은 겸애兼愛였지만 당대에 받아드려지지 않음.

 

*도가道家: 유가와 법가에 가장 오랫동안 도전한 학파로, 대표저작은 노자老子가 썼다고 알려진 도덕경과 장자壯子의 장자

 

**도덕경道德經: 도덕경은 오랫동안 중국인에게 사랑을 받아온 운문이자 산문이며, 자연친화적인 사상과 개인들에게 보내는 구체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 광범위한 내용이다. 93년 후베이성에서 기원전 300년경의 죽간 판본인 도덕경이 출토되었는데, 후대의 판본만큼 뚜렷하게 反공자/맹자적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익명의 필자에 의해 오랜 기간 편집된 것임을 암시한다. 도덕경에 따르면 군주는 강력한 국가 건설을 지양해야하고, 끝없는 삶과 죽음의 순환처럼 음과 양이 되풀이, 순환하고 있기 때문에 약함을 유지하고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부드러운 물이 단단한 바위를 침식해 결국 승리한다는 내용.

 

**장자壯子: 실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장자의 산문 모음으로, 독창적이고 창의적임. 풍자도 뛰어나며 기발한 상상력을 지녔으며 유가들의 진지한 윤리선언과 법가의 국가 전략적 태도에 냉소적 조롱. "혁대 고리를 훔친 자는 죽임을 당하나 나라를 훔친자는 제후가 된다."

 

*한비자韓非子: 법가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권력의 냉혹한 속성을 파악. 기원전 3세기 소국 한나라의 왕자, 한비자가 씀. 인간의 본성은 악하며,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인간 본성을 이용해야 함을 역설. 국가와 군주의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치, 경제, 군사를 어떻게 조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  

 

 

*기원전 221, 법가 사상가들이 진나라를 등에 업고 승리했지만, 정교한 제국 체제가 형성되어 제자백가 시대에 유행한 학파들의 문헌이 모두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장. 전국 시대에는 여러 사상적 요소가 공존하여 각 학파가 명확히 나뉘지 않았고, 하나의 입장에 얽매어 있지 않았음.

 

*초기 중국은 가족을 문명의 기초로 여겨 중시했고, 국가를 가족의 확장 단위로 인식. 대규모 중앙 집권적 관료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으며 조상 숭배와 성현의 지혜에 대한 믿음이 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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